신라의 삼국통일을 어떻게 볼것인가 Report
[목차]
3. 영토상으로 볼때 불완전한 통일이 아닌가?
신형식 : 고려의 통일이라고 해서 고구려의 국토를 회복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10세기말 강동6주의 설치까지도 통일신라의 영역을 벗어난 것도 아니다. 인구문제로 보면 당시 인구 200여만명 중에서 150여만명이 통일신라로 흡수되었으며 약 10만명의 고구려인들이 신라에 흘러들어옴. 발해인의 고려귀화가 10만명일때 결코 적지않은 숫자다.
나 : 어쨌든 불완전한 것은 맞다. 하지만 당대의 상황에서 신라가 만주까지 병합한다는 것은 무리였고, 만주는 애초에 신라의 관심밖이다. 만주까지 병합한다는 것은 당과의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다.
4. 외세를 이용한 비자주적인 통일이 아닌가?
신형식 : 외세이용의 문제도, 백제정벌시에는 당의 군사협조는 사비성함락의 단 한번뿐이고 백제의 주력부대는 김유신에 의해 붕괴되었다. 당군은 명목상의 지원이다. 고구려정벌에 대한 신라의 협조는 백제정벌시 당의 군사적 협조에 대한 보답이다. 신라는 고구려와 당의 충돌을 유도함으로써 신라는 고구려의 남부를 잠식하여 당의 영토적 야욕을 분쇄하는 동시에, 상실한 영토를 복구하려는 의도였다. 신라는 가능한 한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을 통해 당군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통일전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나 : 백제의 주력부대가 김유신에 의해 붕괴되었지만 당군의 협조가 있은 것은 분명하다. 당군도 당시 白江(오늘의 장항)으로 들어왔었기 때문에 어느 군대에게 붕괴되는 것은 시간상의 문제였다. 그리고 위의 당과 고구려 관련 서술은 억지서술이다. 현재의 시각에서 봤을 때의 미화수준이다.
5. 결국 당군을 고구려, 백제 유민과 함께 몰아낸 것이 통일의 의의가 아닌가?
김영하 : 신라가 당의 배신적인 전략수정에 반대하여 당을 몰아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사실로 신라 삼국통일의 의의를 추출하는 것은 사실의 인과관계에도 맞지 않다. 발해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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