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을 다녀와서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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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형식에 그림 약간 첨부
장안문에서 시작해서 서북공심돈, 화서문, 서장대를 따라 걷다보면 팔달문(남문이라고 불리운다) 전까지는 성벽이 끊김이 없으므로 구경하기 쉽다. 물론 이렇게 하면 성벽 안쪽으로만 걷게 되므로 성벽 밖의 모습은 제대로 볼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이렇게 걷다 보면 화서문에서 서장대까지의 거리는 줄곧 오르막 길이고 상당히 가파르기도 하다. 신발은 무겁지 않으며 발에 익은 것을 신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못가서 주저 앉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성 곳곳에 앉아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애인끼리 도시락을 준비해가서 오붓하게 먹어도 좋을 것 같다.
수원 화성 답사기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있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셔졌다. 수원성은 6.25동란을 통해 북문인 장안문을 비롯해 여러 문루와 대, 공심돈 등이 파괴되었으나 1975년부터 3년 동안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함으로써 역사적, 과학적, 예술적 관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니는 건축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수원화성과 매일 같이 있으면서 그 진면목을 인식하지 못했던 나에게 화성연구회의 수원시 시정신문 주간인 김우영 선생님과 수원성 복원공사 당시 일익을 담당하였던 이낙천 님의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답사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처음 동문(창룡문)의 답사로 답사를 시작할 때 나를 붙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 화성을 건축하던 건축책임자 및 담당 건축기사들의 실명제이다. 창룡문 옆 성벽에 그 당시 건축에 관여했던 건축책임자 및 담당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의 이름을 걸고 책임지고 공사를 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오늘날에도 본받아야 할 점일 것이다.
수원성의 축성은 실학파의 거두인 정약용 선생의 설계에 따라 국가의 모든 경제력을 집중하여 그 당시에 있던 모든 과학지식을 총 동원하여 만든 것으로 지금에 와서 볼 때도 참으로 놀랄만한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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